2009년 02월 13일
당신이 모르는 것
1. 나는 안다, 혜림이는 모른다
혜림이는 제 방에서 쌕쌕거리며 잘 자고 있었다. 특별히 엄마, 아빠를 찾지도 않았다고 했다. 곤히 자는 혜림이를 눈으로 확인하고 잠시 숨을 돌리려 남편과 쇼파에 앉았는데,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던 아가씨가 우리에게 다가오며 고해성사와 같은 고백들을 해댄다.
“오늘 혜림이가 한 껀 했어요.”
“뭔 일 있었어요?”
“정우 얼굴에 상처를 냈다우.”
“아이쿠... 어쩌다가? 정우 많이 다쳤어요?”
“다행히, 상처가 길게는 났는데 깊지는 않아서... 다른 애들이랑은 잘 지내는데 유독 정우랑은 종종 부딪혀요.”
“그렇구나. 아휴 어떡하냐. 정우 엄마 속상하시겠다.”
“그래서 혜림이 버릇 고쳐준답시고, 장갑 끼우고 있게 했어요.”
“장갑요? 혜림이가 안 벗어요?”
“처음엔 장난인줄 알다가, 장갑 못 벗게 하니까 나중엔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죠. 그래도 맘먹고 야단쳤어요. 담에 또 그러면 안 되니까. 오늘 혜림이 많이 울었어요.”
“그랬구나.”
“많이 울려서 너무 미안해갖고는 집에 오는 길에 초콜릿 사줬어요.”
세상에 단 맛을 가진 음식이 ‘사탕’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혜림이에게 초콜릿은 만병통치약과도 같다. 아마도 혜림이는 초콜릿을 받아 쥐며 자기가 언제 울었는지조차 까맣게 잊었을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아침.
“엄마!”
혜림이보다 먼저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고 있는데, 스스로 잠깬 혜림이가 방에서 나를 부른다.
“네~ 엄마 여기 있어요. 우리 혜림이 잘 잤어요?”
“네. 엄마 나 초콜릿 먹었어요.”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으면, 일어나자마자... ㅡ,.ㅡ;)
“혜림이 어제 초콜릿 먹었어요? 누가 사 줬어요?”
“고모가”
“그랬구나. 고모가 사줬구나.”
“고모가 혜림이 초콜릿 왜 사 주셨어요? 예뻐서 사줬어요? 울어서 사줬어요?”
“(좀 생각하다가)예뻐서요!”
하하.
혜림이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2. 나는 안다, 남편은 모른다.
일찌감치 일어나 오랜만에 남편과 아침상을 마주했다.
“같이 식사를 해도 될런지요.”
“그러시지요, 부인~”
이른 아침이라 우리는 낮은 음성으로 밥을 먹으며 그저 몇 마디씩 생각나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편이 난데없이!
“오늘 평택 공장에 다녀온다고 했잖아.”
“응.”
“어쩌면 여직원이랑 함께 다녀올지도 모르겠어.”
“누구요?”
“디자인 담당하는 여직원이 공장에 한 번도 안 가봐서 이사님이 같이 갔다 오라고 하셨거든.”
“그래요? 근데 그 얘기를 나한테 하는 이유라도 있어요?”
“아니... 혹시나... 당신이 궁금해할까봐.”
남편은 나와 전화통화 할 때 혹시라도 옆에서 여자 소리가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에게 그 얘기를 꺼냈던 것. 내가 그 정도로 무서웠던 걸까? 아니면 작은 오해의 소지라도 제공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이럴 때 보면, 남편은 참으로 귀엽기 그지없다. 너무 앞서가는 듯해서.
하하. 그러나 남편은 모른다. 내가 그를 얼마나 신뢰하고 사랑하는지를. 나 외에 다른 여자에게 눈 돌리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에 내가 얼마나 강한 확신을 품고 있는지를 남편은 당최 모르는 것 같다.
# by | 2009/02/13 15:02 | Today is... | 트랙백 | 덧글(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