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4일 금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날 우도에 다녀온 건 참 잘한 일이었다며 우리끼리 서로를 칭찬하고 풍성한 아침식사를 나눴다. 비가 오는 관계로 바깥보다는 실내를 돌아다니기로 하고, 동선을 그었다.
처음으로 찾은 곳은 '유리의 성'.
우리에겐 아침에 구입한 우산이 한개 있었지만, 네 식구가 함께 쓰기에는 너무 작았기에 눈물을 머금고 우산 하나를 더 장만했다.
'유리의 성'은 유리로 만든 갖가지 조형물들이 우리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어 주었던 곳이다.
유리의 성 정원을 거닐며 우리 가족은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날씨가 궂어 사진들도 다 우중충할 줄 알았는데... 비를 맞은 유리 조형물들이 반짝반짝 빛나며 더욱 예쁜 배경을 만들어 주었다.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준 것에 대한 댓가(입장료 9천원)가 전혀 아깝지 않았던 유리의 성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오설록 티 뮤지엄'.
오설록을 찾은 이유는,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녹차 밭의 전경을 직접 한 번 보고 싶었고, 그곳에 가면 필수로 먹어보라던 녹차 케이크와 녹차 라떼의 맛도 느끼고 싶어서였다. 헌데, 여기에서 우리의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더 건지게 될 줄이야...
입장료가 없어선지 메뉴판의 가격들이 좀 쎄~긴 했지만, 그래도 남편은 큰 맘 먹고 녹차 케이크와 라떼, 혜림이를 위한 녹차 아이스크림까지 주문해 주었다. 이내 우리에게 찾아올 달콤한 시간을 기다리며 행복해하는 혜림이와 우리 부부.
그리고 예쁜 그릇에 담긴 녹차 삼총차를 마주하게 된 우리들. 그러나, 행복한 순간은 항상 얼마나 짧던지...
녹차 라떼를 먼저 한 모금 마신 내가 남편에게도 한 입 권하며 잔을 건네는 순간, 아이스크림을 먹던 혜림양께서 팔꿈치를 치켜 들며 아빠를 툭,쳤고, 그 바람에 아빠는 녹차 라떼 그릇을 놓치며 뜨끈한 라떼를 왼팔로 받아 먹게 되었던 것. 아... 남편이라서 그 상황을 참았다.
그 순간, 억울한 표정의 혜림이와 당황한 표정의 남편, 아쉬운 마음의 내가 하나로 겹쳐졌다. 우리 자리를 치워주러 온 직원이 혹시나 라떼 한 잔을 서비스로 다시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심 바랬지만, 그 직원은 결코 후덕한 사장이 아니었다. '티 하우스' 바닥에 버린 7000원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녹차밭 구경에 나섰다.
사진을 찍으며 다시 '행복 모드'로 전환한 우리 가족. 무슨 얘기를 하다가 남편이 나를 놀리는 대목에서 내가 남편에게, "아까 녹차 라떼가 좀 더 뜨거웠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남편은 "왜? 라떼가 안 뜨거워서 별로였어?"라고 물었고, 나는 "아니... 더 뜨거웠어야 당신 팔이 후끈하게 데었을텐데 말이야."라고 말해 녹차밭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웃었다. 남편이 나의 개그에 중독되어 가는 거 같다며 나의 개그 코드를 인정해 주었다. 하하하!
혜림이가 슬슬 지루해하며 '초콜릿 박물관'은 도대체 언제 가느냐며 불만 섞인 한 마디를 뱉어냈다. 다음 목적지는 '초콜릿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초콜릿 랜드'이었다. 점심시간이 겹쳐 우리는 맛집 필수 코스인 '황금륭 버거'를 먹고 초콜릿 랜드로 가기로 했다.
비가 와서였을까?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진 않았지만, 그래도 대기시간이 꽤 길었다. 한층 한층~ 장인들이 정성껏 속을 넣어 만드는 수제버거여서 그랬겠지?
황금륭 버거는 수제버거로 크기가 웬만한 성인 얼굴보다도 더 큰 버거였다. 가격은 4-5인용이 1만 7천원. 버거만으로도 배가 부를 것 같아 음료와 감자튀김은 따로 주문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거대한 버거였다.
그 맛은 과연 어떨까? 기대와 설렘을 안고 한 입 베어무니 음...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헌데 내 옆에 앉아서 조심스레 시식을 하던 혜림양께서, "엄마 이건 뭐야?"하며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양상추네~ 왜? 맛이 없어? 그럼 엄마줘."하며 혜림이가 건넨 양상추를 아작아작 씹었는데... 기대했던 '아작아작' 소리 대신 '질겅질겅' 소리가 났다. 뱉어서 다시 보니 그것은 '종이' 같은 물질이었다. 그냥 참고 먹을까... 하다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말을 해야할 것 같아 남편을 시켜 카운터에 가서 이러한 사실을 전했다. 헌데 돌아온 답변은,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였다는. 뭐... 다른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쿨~ 한척 그냥 넘어가면 될 터. 그래도 기분은 좀 찝찝했다. 그런데 사장님도 뭔가 좀 찜찜하셨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음료수와 감자튀김을 들고 올라오셨다. 사실은즉슨, 오늘부터 버거빵을 매장내에서 직접 굽게 되었는데, 처음 하는 작업이었던지라 빵을 싸고 있던 포장지가 직원의 실수로 딸려들어간 것 같다고. 앞으로는 조심하시겠다고 거듭 사죄를 표하셨다.
그렇게 혜림양 덕(?)분에 유기농 감자튀김과 콜라까지 거저 먹게 된 우리 가족은 황금륭 버거집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또 하나 만들었다. (결국 버거는 다 먹지 못하고 3조각을 남겨 포장해 왔다.)
자! 이제는 초콜릿 박물관으로 고고~
혜림이 또래의 아이들은 다 그런걸까? '초콜릿'하면 사족을 못쓴다. 그런 혜림이를 위해 우리가 선택한 장소가 바로 '초콜릿 랜드'였다.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혜림이는 무척이나 설레여 했다. 초콜릿 랜드에는 각양각색의 초콜릿과 다양한 나라의 초콜릿들이 전시돼 있었다.
이제 혜림이도 직접 초콜릿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짜잔~ 혜림이는 자기가 만든 초콜릿을 유치원 친구들에게 나눠주겠다며 먹고 싶은 유혹도 잘 견뎌냈다. ^^ 아장아장 제법 걷게 된 혜빈이도 초콜릿 랜드를 누비며 잘 놀아 주었다.
초콜릿 랜드에서의 즐거운 체험을 마치고 우리는 제주도 3대 폭포 중 하나라는 '천제연 폭포'를 보기로 했다.
다행히 비가 그쳐서 남편이 혜빈이를 들쳐업고 폭포를 향했다. 가을비에 바닥으로 떨어진 낙엽들과 숲내음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가니 그 길의 끝엔 폭포가 있었다.
칠선녀 다리라고 하는 '천제교'를 건너며 혜림이와 견우와 직녀 이야기도 나누고... 선녀 얼굴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천제연 공원을 나오는 길에는 바로 옆에 있는 '감귤농장'을 들러 귤나무 구경도 실컷~ 하고 감귤 농장 주인이 건네주시는 감귤도 맛 보았다.
3박 4일. 결코 짧지 않을 줄로만 알았던 여행이 이제 내일이면 마지막 이라니... 보면 볼 수록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알면 알 수록 더 많은 호기심이 생기는 곳, 제주에서의 세번째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