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0개월의 혜림

지난 1월 8일은 혜림이의 다섯 돌 생일이었다. 만으로 치면 태어난 지 60개월이 되는 나이. 주일이었고, 교회에 갔다가 작은 아가씨네 집에도 들려야 했기 때문에 별다른 이벤트를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도 집에 와서 우리 가족끼리 케잌에 초를 붙이고 혜림의 생일을 다시 한 번 축하해 주었다.
몇 주 전부터 달력에 '내 생일'이라고 글씨를 써 넣고, 생일 선물로 '아이 클레이'라는 점토가 갖고 싶다고 했는데... 무능한 엄마가 미리 준비를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미루고만 있다. ㅠ,.ㅜ
얼마 전 혜림이는 앞머리를 내렸다. 매일 앞머리~ 앞머리~ 노래를 부르길래 유치원 가기 전에 싹둑 잘라주었는데, 내가 잘 자른 것인지, 혜림이 얼굴이 예뻐서(!) 그런 것인지 앞머리가 생각외로 잘 어울렸다. 좀 더 성숙한 어린이가 된 느낌이랄까?
혜림이가 커 보이니 혜빈이도 부쩍 자란 듯 느껴졌다. 언니와 함께 카메라 앞에서 '이쁜 짓'도 할 수 있게 된 혜빈이. 혜빈이도 이 세상에 태어나 호흡한지 15개월에 접어든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혜림이 혜빈이가 계속 건강하고, 늘 환한 미소를 간직한 채 자라주길 바란다. 요즘 혜림이는 엄마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간혹 대드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도 다 엄마의 관심을 사기 위한 술책으로 여기고 사랑으로 더욱 감싸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오늘 저녁에는 가자미 구이와 간장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했는데 혜림이의 구미를 당길만한 맛있는 저녁 상차림으로 나의 사랑을 표현해 주어야겠다. 혜림이가 엄지 손가락을 번쩍 쳐들며 "엄마, 최고!"를 외칠만한! 우리 가정에 찾아와 준 보석보다 반짝이고 귀한 혜림이의 생일을 다시한 번 축하하며...

by sunny | 2012/01/12 15:46 | 혜림이랑~ | 트랙백 | 덧글(4)

2011년을 보내며...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저물고 2012년이 밝았다. 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듯 했지만, 그래도 뒤돌아 보니 제법 먼 길을 걸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신년을 맞이하며 지난날을 돌아보니 2011년은 네 식구가 된 우리 가족이 좀 더 단단해지는 그런 해가 아니었나 싶다.

1월에는 혜빈이의 혜빈이의 100일이 있었다. 혜빈이 출산 후 뒤늦게 알게 된 '폐렴'이라는 나의 병 때문에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병원에 입원을 해야했고 그러한 이유로 혜빈이의 100일은 혜림이 때보다는 좀 더 일찍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2월에는 시어머니의 환갑이 있었다. 어머니의 환갑을 끝으로 양가의 부모님은 모두 환갑의 나이를 넘기게 되셨다. 3월이 되면 꽃피는 봄이 올 줄 알았는데... 혜빈이는 여전히 감기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가계부를 들춰보니 3월에만 혜빈이를 데리고 소아과를 찾은 게 5번이다. 그런 와중에도 뒤집기를 하고, 기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우리 귀염둥이 혜빈이.
4월에는 서울에 살 때 섬기던 모교로 출석을 시작하였다. 주일마다 서울로의 장거리 일정이 힘들법도 했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주일성수를 감당하기로 했다. 유치부에서 반주자로 섬기며 그렇게 다시 을지로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아래 사진은 혜빈이가 을지로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던 날의 사진)
임신때부터 계속되었던 코피의 원인은 코 속에 돋아난 작은 '혹' 때문이었다. 4월에는 혹을 떼어내는 간단하지만 생애 처음이었던 수술도 경험해야 했다. 부지런히 기던 혜빈이는 4월 말경부터 혼자 앉기 시작했고, 입 속에서는 하얀 아랫니가 봉긋 올라오기도 했다.
5월에는 혜림이와 혜빈이가 점점 예뻐지던 달이었다. 이쁜 두 딸을 자랑하고 싶어 우리 네 식구가 혜림아빠 외할머니가 사시는 '울산'으로 첫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도 했던 달이 바로 5월이었다.
그렇게 한 여름의 무성한 나무처럼 혜빈이의 성장에도 가속이 붙어 여름의 초입, 혜빈이는 이제 사물을 붙잡고 혼자 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름이 되어도 혜빈이는 여전히 콧물 감기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7월에는 더운 날씨를 피해 혜림이는 실내놀이터를 애용했고, 온 가족이 함께 롯데월드를 찾기도 했다. 8월 여름휴가는 혜빈이의 '아직 어림'을 이유로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들을 돌아다니며 보냈다.
9월에는 추석이 있었다. 주일성수를 해야했으므로 시댁에 미리 내려가지 못하게 되어 혼자서 명절음식을 이것 저것 만들어, 상하지 않게 잘 싸서 가지고 갔던 기억이 새롭다. 아! 또 시댁에 가는 길에 자동차 마후라(?)가 주저앉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교체해야했던 일도 생각난다. ㅋㅋ (마후라를 교체한 남편은 10년이 된 지금의 차를 앞으로도 10년은 더 탈 수 있을 것 같다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추석 지나고 우리 집은 거금을 들여 낡은 샷시를 전부 교체했다. 샷시 교체 후 집안이 좀 더 환해지고 따뜻해진 느낌이 있긴 했지만, 며칠간은 먼지와의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그리고 샷시를 교체했음에도 우리 집은 우풍이 있어 여전히 춥다는 것을 이번 겨울에 알게 되었다. ㅜ,.ㅡ)

드디어 10월! 혜빈이가 돌을 맞이했다. 돌잔치 대신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했으므로 돌잔치를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 마음이 편하고 여유로웠다. 그래도 스튜디오 가서 사진도 찍고, 엄마표 돌상도 차려주고 할 것은 다 했다는...^^;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3박 4일의 제주도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잊지 못할 추억들을 많이 안겨주었다. 지금도 생생한 제주도의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행복해하던 림빈자매의 표정들... 제주도 여행이 계기가 되어 우리 가족은 앞으로도 매년 이런 가족여행을 꿈꾸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 그런데 제주도 사진을 찾아보니 사진폴더 자체가 없다. 남편이 컴터를 밀면서 또... 다 지워버린걸까?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급좌절이다. OTL...)

그리고 맞이한 11월.
11월은 이번 겨울이 가장 혹독한 계절일 것이라는 걸 예고한 달이었다. 우리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제법 많은 돈이 지출되었다. 수입은 정해져있고 지출 또한 그에 맞게 정해져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하자 우리 가족은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했다. 이것저것 신경쓸 일이 많아서였는지 신경성 소화불량에 걸려 100년 전통의 활명수를 하루에 3병씩 하루가 멀다하고 마신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고난은 인내와 연단을 동반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돌이 지나면 건강해 질 줄 알았던 혜빈이는 엄마의 간절한 기도에도 끄떡하지 않고, 연약한 기관지를 자랑하고 있다. 그래도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아픈 적 없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하다. 또한 감기에 걸렸어도 끼니 거르지 않고 밥 잘 먹어주시니 그것 또한 감사할 일로 여기고 있다.
혜림이는 또 어떠한가! 아직 만으로 5세(60개월)도 되지 않았음에도 유치원에서는 6세반에서 보란듯이 잘 적응하고 있으며, 2012년 새해가 밝았으니 이제 자기는 7세라며 너무나도 위풍당당하게 잘난 척을 해주고 계시다. 혜림이가 내 딸인 것이 마냥 감사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너무나도 부족한 엄마에게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과분한 딸을 주신 것 같다.
나는 2012년엔 좀 더 힘들어지기로 결심했다. 주일마다 유치부에서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새해엔 중고등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중고등부에 진 빚이 많은 나로써는 사춘기의 아이들을 잘 다독이고 그 아이들에게 친구와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다행히도 남편은 나를 잘 이해해 주었다. 주일마다 두 아이를 유치부실에서 혼자 돌보아야 했지만 남편은 기꺼이 나의 손을 잡아 주었다. 남편은 결단의 순간에 더욱 더 빛을 내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맞이한 2012년 1월...
창밖으로 흩날리는 눈발처럼 무수한 기도의 제목들이 내 마음에도 흩날리며 켜켜이 쌓이고 있다. 친정과 시댁식구를 위해, 내가 맡은 일곱명의 중3 친구들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과 두 딸, 가까운 이웃과 친구들을 위해... 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할 것이다. 기본에 충실하고, 맡은 바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것! 그것이 올해 가져보는 나의 작은 바람이다.

by sunny | 2012/01/03 15:08 | 트랙백 | 덧글(4)

골골 혜빈

젖을 끊으면 밤에 좀 잘 잘까 싶어 혜빈이가 '찌찌'라 부르는 모유수유를 중단한지도 오늘로 3주차에 접어든다. 그러나 여전히 혜빈이는 밤에 잘 자지 못하고 칭칭거리며 이 어미를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간밤에도 12시부터 공식적으로 깬 것만해도 5번이니... 잠을 잤다기 보다는 잠깐 잠깐씩 눈을 부쳤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지난 밤 징징거림의 원인은 '목감기'였다. 새벽녘, 열이 뜨끈하여 체온계를 가져다 대 보니, 37.7℃...  어짜피 콧물감기약을 다 먹어 병원에 가야할 날이었다. 혜림이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단골 소아과를 찾았다.
귀마개를 쓰고 재밌어라 하는 혜빈이는 다행히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한 달이 멀다하고 찾은 동네 병원에서 혜빈이는 의사 선생님을 '아빠', 간호사 언니들을 '엄마'라 불러댔다. 진찰시에도 굉장한 협조를 보이며 병원 아빠,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 한 지 이미 오래다. 알아서 척척~ 의사 선생님이 청진기 댈 때나 입 속을 보고, 귀 안을 들여다 볼 때도 거의 반사적으로 입을 벌리고 고개를 돌리니 어찌 귀여움을 받지 않겠는가.

언니가 유치원을 가고 올 때 외에는 거의 집에만 갇혀서 지내는데 왜이리 감기에 잘 걸리는 것일까?
집에 있을 때에도 따뜻하게 옷 입히고 그것도 모자라서 양털모자에 토끼 신발까지 신기고 있는데 말이다. 그야말로 '골골 혜빈'이가 아닐 수 없다. 보약이라도 지어서 먹여야하는 것인지... 건강보조식품이라도 사야하는 건 아닌지... 엄마의 시름이 깊다. 사람들을 "어릴 때 자주 아픈 아이가 크면 건강하다"는 말로 나를 위로해 주지만, 지금 당장의 힘듦과 안쓰러움이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이야기로 사라질 리 만무하다. 하루빨리 혜빈이가 건강해져서 바깥 바람이 두렵지 않고, 창문 여는 일이 망설여지지 않는 때가 오기만을 그저 바랄 뿐이다.

by sunny | 2011/12/13 14:52 | 신통이랑~ | 트랙백 | 덧글(9)

혜림이의 성대결절

혜림이의 쉰 목이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이비인후과를 찾았는데 안타깝게도 '성대결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음향분석 장비를 통해 음성분석 중인 혜림이

 성대는 사춘기까지 성장하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고, 때문에 별다른 조치나 처방 없이  그저 말수를 줄이고 물을 많이 마시라는 조언만을 듣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제 갓 다섯 살.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것이 정말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넘쳐나는 혜림이가 '묵언수행'을 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을 일이었다. 게다가 성탄절을 앞두고 유치원에서는 매일같이 역할극 암송과 율동을 연습하고 있었으니... "좀 더 큰 소리로!"를 외쳐대실 선생님의 모습이 눈 앞에 선했던 나는 당분간 유치원을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혜림이에게 딱 일주일만 유치원에 가지 말자고 하니, 나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혜림이가 그렇게 하겠다고 선뜻 대답을 했다. 하지만, 월-수-금요일에 있는 영어특강은 꼭 출석하고 싶다고 했다. 특강시간에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말을 하더라도 입만 뻥끗하겠다는 조건이었다. 그리하여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선생님의 반응은 애가 닳아 있으셨다. 당장 돌아오는 주일이 발표회인데, 혜림이가 없이는 연습이 불가하다는 말씀이셨다. 물론 혜림이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모두 숙지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혜림이를 보고 따라하기 때문에 반드시 혜림이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특강시간 보다 먼저 혜림이를 보내달라고 하셨다. 흠냐... 좋아해야 하는건지, 그럼에도 안 된다고 해야하는건지... 어쨌건 발표회가 코앞이었으므로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혜림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왔다.
 아... 정말 혜림이의 자리가 맨 앞 줄 정 가운데였다!

집에 오면서 혜림이의 '성대결절'에 대한 원인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상담을 했던 병원에서는 보통, 아이가 '성대결절'이 걸리는 경우에 대해 발성법에 문제가 있거나, 부모가 소리를 많이 지르는 경우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에 걸려서 오기도 한다고 하셨다. 사람 좋아 보이셨던 담당 선생님은 나를 보시며 "하지만, 어머니는 그러실 분이 아니신거 같아요"라며 나에 대한 근거없는 신뢰감을 표현하셨다. 헌데, 애정남이 그랬던가? 농담과 디스의 차이점에서 농담은 웃음을 주지만, 디스는 상처를 준다고... 선생님의 말씀에 내 마음 한 곳이 뜨끔했다. 아... 혜림이의 내지르는 듯한 발성의 발원지는 바로 '나'였기 때문이었다.  혜림이가 해선 안 되는 행동을 할 때 나는 언제나 큰 목소리를 무기삼아 혜림이에게 폭풍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 그건 혜빈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혜빈이에게 하는 걸 보고 혜림이도 혜빈이에게 똑같이 행동했다. 원인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었으니, 어쩜 혜림이의 성대결절은 내가 만들어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잉잉잉...

성대결절을 치료하기 위해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할 것은 비단 혜림이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었다. 나를 보고 배우는 혜림이에게 내가 먼저 소곤소곤 조곤조곤 말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나에게는 어울릴지언정 예쁜 얼굴을 가진 혜림이에게 걸걸한 목소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앞으로 서로 조심하여 다시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기를!

by sunny | 2011/12/08 14:55 | 시간의 기록 | 트랙백 | 덧글(7)

림빈자매 라이프

주일을 보내고 맞이하는 월요일 낮은 평소보다 길다. 서울에 있는 교회로 주일성수를 하고 난 다음 날이면, 피곤이 덜 풀린 혜빈이의 낮잠이 2-3시간씩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온이 많이 떨어져 쌀쌀한 바깥 날씨에 반해, 거실 베란다 창을 통과하여 집안으로 들어오는 가을볕은 따사롭기 그지없다. 곤히 잠든 혜빈이를 침대에 눕히고, 집안일들을 모두 끝낸 후에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는 호사도 누려본다. 아, 행복이 먼 곳에 있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라는 혜빈이는 이제 제법 말귀도 알아듣고 의사표현도 할 줄 알아, 먹기 싫은 음식 앞에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한다. 지난 토요일에는 밤중수유를 완전히 끊고자 아빠랑 둘이서 자기도 했는데, 그 후로는 밤에도 젖을 찾지 않고 깊은 잠을 청하고 있다. 남편에게 스페셜 땡큐!

혜빈이의 성장이 누구보다도 반가운 건 바로 혜빈이의 언니, 혜림이다.
자기 전 한 번씩 혜빈이에게 분유를 먹이는 날이면, 자기가 먹이면 안 되겠느냐고 통사정을 하며 내게 매달린다. 동생에게 젖병을 물리고 자기가 잡아주는 젖병을 쪽쪽 빠는 동생을 보며 혜림이는 무한한 행복에 빠진다. 그리고는 그 사랑스러운 얼굴로 내게, "엄마~ 혜빈이가 있어서 차암~ 좋다!"고 말한다. "혜림아, 엄마는 네가 있어서 더 좋구나!"

혜빈이의 장난감을 혜빈이보다 더 많이 갖고 노는 혜림이는 오늘도 혜빈이의 자동차에 '불편한 자세'로 '자연스럽게!' 착석한다.
혜림이의 탑승이 끝나면 혜빈이는 기다렸다는 듯 혜림이가 탄 자동차를 뒤에서 밀기 시작한다. 엄마 입장에선 위치가 서로 바뀐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해 보지만, 누가 타고 누가 미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둘이 얼마나 사이좋고 재미있게 노느냐이므로 뱉고 싶은 잔소리는 침과 함께 꼴깍~ 삼기기로 한다.

가끔은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혜빈이가 귀찮은 듯, 아예 혜빈이가 따라올 수 없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자신만의 일상을 즐기기도 하는 혜림양이지만, 그래도 둘은 항상 같은 공간 안에 있다.
혜림이가 혼자였더라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행복이 혜빈이와 함께 우리 가정 안에 찾아왔다. 혜림이는 가끔 "엄마, 내가 둘째로 태어나고 혜빈이가 첫째로 태어났으면... 그럼 누굴 더 사랑할꺼예요?"라는 질문을 한다. 물론 혜림이가 듣고 싶은 대답을 모를 리 없는 엄마이지만, "엄마는 네가 혜림이라서 사랑하는 거지, 첫째라서 사랑하는 게 아니야"라고 답해준다.

기분 좋게 자고 깬 혜빈이가 코맹맹이 소리로 "엄마~"하고 부른다. 뭐든 잘 먹는 우리 둘째 딸에게 늦은 점심을 챙겨주고나면 이제 곧 큰 딸을 데리러 가야할 시간이 되겠지? 림빈자매의 엄마로 사는 나는 참 행복하다.

by sunny | 2011/11/21 14:38 | 시간의 기록 | 트랙백 | 덧글(10)

제주도로 떠난 가족 여행기 4

2011년 10월 15일 토요일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는 맑은 날씨. 서울과 인천에는 비가 많이 내렸던지 우리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몇 통 받기도 했다. 일찌감치 아침을 먹고, 체크 아웃을 한 후 우리는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기 숙소를 나섰다. 처음으로 향한 곳은 제주도에 도착한 첫날 들렸던 테지움 옆에 위치한 '프시케 월드'와 '거울 궁전'이었다.

'프시케'(Psyche)는 그리스어로 '나비', '영혼'을 뜻한다고 하는데 프시케 월드는 그야말로 '나비왕국'이라 할 만 했다.
또한 나비는 물론, 각종 곤충들과 재활용품들을 소재로 다양한 볼거리들을 제공하고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곤충들을 가지고 여러가지 테마로 작품들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 갇힌 곤충들이 살짝 불쌍하기도 했다.
혜림이와 혜빈이도 나비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아보았다. ㅋㅋ

프시케월드에는 동물들에게 직접 먹이를 주는 곳이 있었는데, 토끼에게 먹이 주는 일이 재미있었던지 혜림이는 토끼들에게 자꾸만 먹이를 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남편은 먹잇값 2천원이 세상에서 제일 아까운 돈처럼 느껴진 듯, 더 이상은 안 된다며 혜림이에게 '절제'를 요구했다. 아쉬운 마음만 한 가득 안고 나온 혜림이...
남편의 예감은 크게 어긋나지 않아 거울궁전을 둘러보고 나온 길목에서 우리는 건물 뒷켠에 방치되어 있는 토끼떼(?)들과 마주하게 되었고, 혜림이는 곳곳에 널린 풀들을 마구잡이로 뜯어 원없이 토끼들에게 먹이를 줄 수 있었다. 혜림이와 혜빈이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프시케 월드' 관람을 마치고 찾은 '거울 궁전'은 우리 가족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거울을 다리 사이에 끼고 춤을 추는 '거울쑈' 때문에 얼마나 배꼽을 잡고 웃었던지... 혜림이는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동작이 마냥 신기했던지 큰 거울 앞에서 한 동안 떠날 줄 몰라했다.

겨우 입꼬리를 내리고서 '거울 미로'로 향한 우리 가족은 입구에서 나눠주는 위생장갑을 끼고 거울 미로 안으로 입성했다. 그래봤자 거울이고, 유리겠지... 라고 생각하며 만만히 보고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길 찾기가 어려워 출구를 찾는데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거울과 초정밀 유리가 교묘히 섞여 어떤 것이 진짜 '나'이고 어떤 것이 가짜 '나'인지 무척이나 헷갈렸다.
자신만만해 하던 혜림이는 '거울'에 비친 아빠를 보고 "아빠~"하며 달려오다가 이마를 거울에 '쾅'하고 부딪히며 뒤로 나뒹굴기까지 했다. 엉엉 우는 혜림이를 보며 결코 웃으면 안 되었는데, 철없는 우리 부부는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혜림이에게 참으로 미안하던 순간이었다.

웃음과 눈물이 공존했던 프시케월드와 거울궁전 관람을 마치고, 우리 가족이 마지막 코스로 정한 곳은 '선녀와 나무꾼 테마 공원'이었다. 가는 길목에 '도깨비 도로'에도 잠시 들러 그 유명한 '착시현상'도 잠깐 경험해 주시고, 제주산 '한우'들과도 조우했다.
제주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선녀와 나뭇꾼 테마파크'에 도착했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6-70년대 풍경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함께 올 만한 장소로 괜찮을 듯 싶었다. 전시된 물품들이 모두 개인이 소장한 것이라는 점에 크게 놀랐다. 우리 부부에게는 추억에 잠기게 해 주는 것들이 혜림이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혜림이 또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전시품들을 관람하고 있었다.
'선녀와 나뭇꾼 테마파크'는 안과 밖이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어 그곳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갖기에 충분했다. 따사로운 햇볕에 혜빈이는 낮잠에 빠져들었고, 혜림이와 남편은 잘 꾸며진 놀이터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3박 4일간의 제주도 여행은 마침표를 찍었다.

공항에서 저녁을 먹고 비행기에 무사히 올랐지만, 김포에 가까와오자 좋지 않은 날씨로 인해 비행기가 흔들리며 곳곳에서 번개가 번쩍이는 경험을 해야했다. 그 덕에 우리 가족은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하나님께 어찌나 정성스런 기도를 올렸던지... 하나님이 보우하사 무사히 김포공항에 착륙했고, 우리는 내리자마자 감사기도를 올렸다. ^^

첫 가족 여행은 무척이나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두번째 여행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사는데 급급해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을 잃지 않도록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자주, 가족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그리고 이 소박한 꿈이 현실이 되도록 앞으로도 더 열심히 살자고 했다.

by sunny | 2011/11/12 21:52 | 트랙백 | 덧글(4)

제주도로 떠난 가족 여행기 3

2010년 10월 14일 금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날 우도에 다녀온 건 참 잘한 일이었다며 우리끼리 서로를 칭찬하고 풍성한 아침식사를 나눴다. 비가 오는 관계로 바깥보다는 실내를 돌아다니기로 하고, 동선을 그었다.

처음으로 찾은 곳은 '유리의 성'.
우리에겐 아침에 구입한 우산이 한개 있었지만, 네 식구가 함께 쓰기에는 너무 작았기에 눈물을 머금고 우산 하나를 더 장만했다.

'유리의 성'은 유리로 만든 갖가지 조형물들이 우리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어 주었던 곳이다.
유리의 성 정원을 거닐며 우리 가족은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날씨가 궂어 사진들도 다 우중충할 줄 알았는데... 비를 맞은 유리 조형물들이 반짝반짝 빛나며 더욱 예쁜 배경을 만들어 주었다.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준 것에 대한 댓가(입장료 9천원)가 전혀 아깝지 않았던 유리의 성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오설록 티 뮤지엄'.
오설록을 찾은 이유는,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녹차 밭의 전경을 직접 한 번 보고 싶었고, 그곳에 가면 필수로 먹어보라던 녹차 케이크와 녹차 라떼의 맛도 느끼고 싶어서였다. 헌데, 여기에서 우리의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더 건지게 될 줄이야...

입장료가 없어선지 메뉴판의 가격들이 좀 쎄~긴 했지만, 그래도 남편은 큰 맘 먹고 녹차 케이크와 라떼, 혜림이를 위한 녹차 아이스크림까지 주문해 주었다. 이내 우리에게 찾아올 달콤한 시간을 기다리며 행복해하는 혜림이와 우리 부부.
그리고 예쁜 그릇에 담긴 녹차 삼총차를 마주하게 된 우리들. 그러나, 행복한 순간은 항상 얼마나 짧던지...
녹차 라떼를 먼저 한 모금 마신 내가 남편에게도 한 입 권하며 잔을 건네는 순간, 아이스크림을 먹던 혜림양께서 팔꿈치를 치켜 들며 아빠를 툭,쳤고, 그 바람에 아빠는 녹차 라떼 그릇을 놓치며 뜨끈한 라떼를 왼팔로 받아 먹게 되었던 것. 아... 남편이라서 그 상황을 참았다.

그 순간, 억울한 표정의 혜림이와 당황한 표정의 남편, 아쉬운 마음의 내가 하나로 겹쳐졌다. 우리 자리를 치워주러 온 직원이 혹시나 라떼 한 잔을 서비스로 다시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심 바랬지만, 그 직원은 결코 후덕한 사장이 아니었다. '티 하우스' 바닥에 버린 7000원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녹차밭 구경에 나섰다.
사진을 찍으며 다시 '행복 모드'로 전환한 우리 가족. 무슨 얘기를 하다가 남편이 나를 놀리는 대목에서 내가 남편에게, "아까 녹차 라떼가 좀 더 뜨거웠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남편은 "왜? 라떼가 안 뜨거워서 별로였어?"라고 물었고, 나는 "아니... 더 뜨거웠어야 당신 팔이 후끈하게 데었을텐데 말이야."라고 말해 녹차밭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웃었다. 남편이 나의 개그에 중독되어 가는 거 같다며 나의 개그 코드를 인정해 주었다. 하하하!

혜림이가 슬슬 지루해하며 '초콜릿 박물관'은 도대체 언제 가느냐며 불만 섞인 한 마디를 뱉어냈다. 다음 목적지는 '초콜릿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초콜릿 랜드'이었다. 점심시간이 겹쳐 우리는 맛집 필수 코스인 '황금륭 버거'를 먹고 초콜릿 랜드로 가기로 했다.

비가 와서였을까?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진 않았지만, 그래도 대기시간이 꽤 길었다. 한층 한층~ 장인들이 정성껏 속을 넣어 만드는 수제버거여서 그랬겠지?
황금륭 버거는 수제버거로 크기가 웬만한 성인 얼굴보다도 더 큰 버거였다. 가격은 4-5인용이 1만 7천원. 버거만으로도 배가 부를 것 같아 음료와 감자튀김은 따로 주문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거대한 버거였다.
그 맛은 과연 어떨까? 기대와 설렘을 안고 한 입 베어무니 음...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헌데 내 옆에 앉아서 조심스레 시식을 하던 혜림양께서, "엄마 이건 뭐야?"하며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양상추네~ 왜? 맛이 없어? 그럼 엄마줘."하며 혜림이가 건넨 양상추를 아작아작 씹었는데... 기대했던 '아작아작' 소리 대신 '질겅질겅' 소리가 났다. 뱉어서 다시 보니 그것은 '종이' 같은 물질이었다. 그냥 참고 먹을까... 하다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말을 해야할 것 같아 남편을 시켜 카운터에 가서 이러한 사실을 전했다. 헌데 돌아온 답변은,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였다는. 뭐... 다른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쿨~ 한척 그냥 넘어가면 될 터. 그래도 기분은 좀 찝찝했다. 그런데 사장님도 뭔가 좀 찜찜하셨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음료수와 감자튀김을 들고 올라오셨다. 사실은즉슨, 오늘부터 버거빵을 매장내에서 직접 굽게 되었는데, 처음 하는 작업이었던지라 빵을 싸고 있던 포장지가 직원의 실수로 딸려들어간 것 같다고. 앞으로는 조심하시겠다고 거듭 사죄를 표하셨다.
그렇게 혜림양 덕(?)분에 유기농 감자튀김과 콜라까지 거저 먹게 된 우리 가족은 황금륭 버거집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또 하나 만들었다. (결국 버거는 다 먹지 못하고 3조각을 남겨 포장해 왔다.)

자! 이제는 초콜릿 박물관으로 고고~
혜림이 또래의 아이들은 다 그런걸까? '초콜릿'하면 사족을 못쓴다. 그런 혜림이를 위해 우리가 선택한 장소가 바로 '초콜릿 랜드'였다.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혜림이는 무척이나 설레여 했다. 초콜릿 랜드에는 각양각색의 초콜릿과 다양한 나라의 초콜릿들이 전시돼 있었다.
이제 혜림이도 직접 초콜릿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짜잔~ 혜림이는 자기가 만든 초콜릿을 유치원 친구들에게 나눠주겠다며 먹고 싶은 유혹도 잘 견뎌냈다. ^^ 아장아장 제법 걷게 된 혜빈이도 초콜릿 랜드를 누비며 잘 놀아 주었다.
초콜릿 랜드에서의 즐거운 체험을 마치고 우리는 제주도 3대 폭포 중 하나라는 '천제연 폭포'를 보기로 했다.
다행히 비가 그쳐서 남편이 혜빈이를 들쳐업고 폭포를 향했다. 가을비에 바닥으로 떨어진 낙엽들과 숲내음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가니 그 길의 끝엔 폭포가 있었다.
칠선녀 다리라고 하는 '천제교'를 건너며 혜림이와 견우와 직녀 이야기도 나누고... 선녀 얼굴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천제연 공원을 나오는 길에는 바로 옆에 있는 '감귤농장'을 들러 귤나무 구경도 실컷~ 하고 감귤 농장 주인이 건네주시는 감귤도 맛 보았다.
3박 4일. 결코 짧지 않을 줄로만 알았던 여행이 이제 내일이면 마지막 이라니... 보면 볼 수록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알면 알 수록 더 많은 호기심이 생기는 곳, 제주에서의 세번째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by sunny | 2011/11/07 17:38 | 트랙백 | 덧글(4)

제주도로 떠난 가족 여행기 2

2011년 10월 13일 목요일

제주도에서의 둘째날이 밝았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바닷가를 끼고 있어 지난 밤, 저녁식사 후 우리 가족은 바닷가 산책을 다녀오기도 했다. 금요일부터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예보에 오늘은 '우도'를 다녀오기로 하고 일찌감치 숙소를 나섰다. 날씨는 그야말로 쾌청했고, 바람도 적당히 선선했다. 우도를 향하던 중 발견한 아름다운 해변. 우리는 잠시 내려 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로 했다.
이곳의 이름은 '김녕성세기 해변'. 맑은 물과 고운 모래가 소리없이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하늘은 또한 어찌나 푸르렀던지... 절로 신을 벗게 되고, 절로 손을 들게 되는 그런 곳이었다.
아름다운 바다와의 만남으로 인해 우도로 가는 길이 더욱 설레였다. 성산항에 도착하니 어느덧 점심시간. 간단히 먹고 배에 오르면 되겠다 싶어 '전복죽'을 주문했는데, 이런... 미리 끓여 놓은 죽을 파는 게 아니었나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우도에 가서 점심을 먹는건데... 후회해봤지만, 이미 식당의 할머님은 압력솥에 불을 올리고 계셨다. 전복죽을 기다리며 예쁜 딸들에게 선글라스를 씌워보았다. 혜림이는 거의 모델 포즈이다. ㅋㅋ
전복죽은 참으로 맛있었다. 혜빈이가 한공기를 다 비울 정도였고, 혜림이도 "한 그릇 더!"를 외치며 죽을 사정없이 흡입했다. 부른 배를 꺼트릴겸 성산항 산책을 하던 중, 점프샷이라는 것도 찍어보았다. ㅎㅎ 역시 카메라를 바꾸길 잘했다.
우리는 차와 함께 우도행 배에 오르기로 했다. 차를 가지고 가는 관광객들은 생각보다 많았는데, 후진으로 배에 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같은 초보운전자라면 어림 없는 일이었겠지만, 남편은 베스트 드라이버였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우도에 도착하여 차로 한바퀴 돌아보고 우도봉으로 향했다.
2000년인가, 2001년인가... 그때도 나는 단짝 친구들과 우도봉에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일로 삐져서는 친구들과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우도의 아름다움도 외면한 채 우울한 기억만을 남기고 우도봉을 내려왔다. 그래서 아쉬움이 많이 남던 곳이었는데... 십년이 지난 지금 둘째딸의 돌을 맞아 남편과 함께 다시 이곳을 찾게 될 줄이야... 감회가 새로웠다. 언제쯤 다시 소싯적 친구들과 여행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그날이 오기는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남편과 나누며 우리는 우도봉 정상을 향해 올랐다. 
잠이 오는지 아빠에게는 좀처럼 가지 않으려고 하는 혜빈이를 업고, 혼자 걸어올라가기에도 숨이 벅찬 그 길을 나는 혜빈이를 업고 올랐다. 아... 나니까 했다. ㅡ,.ㅡ 우도봉을 향해 오르며 입으로 끊임없이 되뇌였던 말은, "삶은 고행이라고 했어."였다. ㅋㅋ
혜림이는 안아달라는 말 한 마디 없이 우도봉 정상까지 올라갔다. 언제 이렇게 자랐누... 싶을만큼 대견하고 대견했던 우리 큰 딸.
몹시 힘든 표정을 지어보라는 주문에 남편은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결국 혜빈이는 우도봉 정상에서 곯아 떨어지셨다. ^^  카메라만 들이되면 풍경이 되고, 작품이 되는 아름다운 섬, 우도. 그곳에서의 두번째 추억이 생겼다.
숙소를 한 군데로 정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어느 곳엘 가든 숙소로 돌아가는 거리와 시간이 문제였다. 우도에서 마지막 배를 타고 성산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시계는 5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더 큰 욕심을 부릴 수가 없어 우리는 근처에 있는 '김녕미로공원'을 마지막 목적지로 정하고 슝슝 달려갔다.

미로공원에 도착하니 혜빈이가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기념으로 찰칵~!
나는 혜림이와 한 팀이 되고, 남편은 혜빈이와 한 팀이 되어 우리는 미로의 중간에 있다는 종을 향해 힘껏 내달리기 시작했다. 우도봉에 오르느라 힘들었을 혜림이는 백만돌이 에너자이저같았다. 관엽식물로 만들어진 미로공원을 흥미진진하게 뛰어다니며 종을 향한 집념을 과시했다. 그리고 결국은 해.냈.다! 혜림이가 아빠보다 먼저 미로공원의 종을 친 것!
혜림이가 좋아하면 우리 부부도 신이 났다. 혜림이가 이토록 미로공원을 좋아해줄 줄이야... ^^;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뒤로 하고, 우리는 미로공원의 가장 마지막 관광객이 되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점심을 죽으로 떼운 우리는 몹시도 허기져 있었나보다. 남편과 나, 혜림이는 저녁 메뉴로 '삽겹살'을 이구동성으로 외쳤고, 우리는 깔깔깔~ 거리며 제주도 도야지를 잡으러 제주 시내의 식당으로 향했다.

by sunny | 2011/11/03 23:17 | 트랙백 | 덧글(11)

신혜빈의 첫돌잔치 2

혜빈이가 태어난 지 만으로 1년이 되는 날.
가족끼리 조촐하게 저녁이나 먹을까 하다가 뭔가 허전할 것 같은 마음에
인터넷으로 저렴한 돌상차리기 사이트를 찾아 3만원짜리 돌상을 대여했다.
시어머니와 아가씨들, 친정식구들도 와 준다는 말에
이곳저곳 청소도 미리하고 음식 장만도 좀 더 하려했지만 
제주도 여행의 여독이 풀리지 않아 혜빈이 생일 당일이 되어서야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책상과 피아노 의자를 대동하여 상을 차리고
현수막에 풍선까지 달아놓으니 제법 그럴듯한 돌상이 되었다.
쌀을 앉히고, 미역국을 끓이고, 불고기 양념을 재어 놓은 후 혜림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왔다.
집에 온 혜림이는 눈이 휘둥그레~
예쁜 드레스를 입혀주었더니 입이 찢어져라 함박웃음을 짓고는 동생과 왈츠까지 쳐 주신다.

어머니와 아가씨들, 그리고 사랑스러운 조카들이 먼저 도착해 기념 촬영을 시작했다.
아가씨가 3만원짜리 돌상같아 보이지 않고 더욱 럭셔리 해 보인다고 칭찬해 주어,
혼자서 풍선 부느라 다 빠졌던 기운이 다시 충전되었다.

남편도 다행히 일찍 퇴근하여 우리 부부도 돌상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대여해 온 돌복을 혜빈이에게 입히고 어머니께서 준비해 오신 과일까지 올려놓으니 더욱 풍성한 돌상이 되었다.
그렇게 시댁 식구들과의 사진촬영이 마무리 될 즈음 이윽고 도착한 친정 식구들...
사실 친정아빠까지 와 주실 줄은 몰랐는데, 엄마와 함께 먼 걸음을 해 주셨다.
케잌에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후 가족들의 덕담을 듣는 순서를 가졌다.
잠이 오는지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 혜빈이를 더는 붙잡아 둘 수 없어 곧바로 돌잡이를 진행했다.
돌잡이 물품으로는 실과 청진기, 마이크와 돈, 그리고 연필이 준비되었다.
혜빈이는 어떤 물품에 가장 먼저 손을 댈까?
역시나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마이크를 1번으로, 연필을 2번으로 청진기를 3번으로 잡았다.
뭐가 되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재밌고 신나게 하는 혜빈이가 되기를...

정신없이 후딱~ 해치운 혜빈이의 첫돌잔치.
먼길 마다않고 한달음에 달려와준 '가족'이라는 따뜻한 이름의 그대들에게
이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지난 1년, 콧물감기와 한시도 떨어져 본 적 없이
소아과를 제집 드나들듯, 물약과 가루약을 후식처럼 먹어가며
그렇게 첫돌이 되기만을 기다린 우리 혜빈이.
앞으로의 1년은 내내 건강하기만을 기도한다.
그리고 혜림이 언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하나님의 아이로 커주기를...
여러분~ 사랑해요!♡

by sunny | 2011/10/21 15:23 | 신통이랑~ | 트랙백 | 덧글(4)

신혜빈 첫돌잔치

2011년 10월 18일 신혜빈 아가의 첫돌잔치
직접 와서 또는 마음으로...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건강하고 총명하게 자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의 아이가 되어
받은 사랑을 전하며 살겠습니다.

ps. 혜빈이의 첫돌잔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by sunny | 2011/10/20 01:13 | 신통이랑~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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